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왜 이 짓을 하고 있는가.
나는 왜 이런 미련한 짓을 하고있는가.
나는 왜 이런 힘들고, 어렵고, (때로는) 더러운 일을 하고 있는가.
나는 왜 떠나려고 하는가.
그리고 나는 왜, 내 시간과 열정을 모두 이 짓에 쏟아붓고 있는가.
설령 성취한다고 한들, 남들이 크게 알아주지도 않을, 이 일을 나는 왜 하고 있는가.

뭔가 깔끔하지는 않더라도 납득할 만한 그런 정리가 필요했다.
평소 What보다는 Why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써
단순하면서도 구체적이고, 구체적이면서도 단순한
그런 why가 필요했다.

내가 떠나려는 이유.
내가 사는 이 작은 세계를 미련없이 떠나,
미지의 새로운 세상으로 힘차게 발 내딛으려는 이유.

그건 바로,
발악(發惡)이었다.
내 자신에 대한 발악.
내 삶에 대한 발악.
세상에 대한 발악.

사전은 발악(發惡)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온갖 짓을 다하며 악을 쓰다.”

나는 내 자신에게 온갖 짓을 다하며 악을 쓰고 싶었다.
나는 내 삶에게 온갖 짓을 다하며 악을 쓰고 싶었다.
나는 내 세상에게 온갖 짓을 다하며 악을 쓰고 싶었다.

다 해보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지구 끝이라도 가서 온갖 짓을 다해보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가능하다면…

모든 일에 있어 언제나 가능성만을 찾던 나였다.
모든 일에 있어 언제나 비용대비 효과를 계산했던 나였다.
모든 일에 있어 언제나 나아가기 보다 움츠리려고만, 숨어있으려고만 했던
그런 나약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며, 가끔은 그런 모습에 스스로 연민을 느꼈던 나였다.

난 발악하고 싶었다.

모든 짓을 다해서라도, 목이 터져라 악을 쓰더라도,
꺼져가는 내 삶의 횃불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하고
어딘지 몰라 헤매는 내 삶의 등대를 다시 바다로 비추게 하고
‘점점 빠르게’ 밖에 모르던 내 삶의 음악이 다시 스타카토를 연주하게 하고 싶었다.

내 삶의 횃불, 내 삶의 등대, 그리고 내 삶의 스타카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