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때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과목은 영어였다. 그래서 책꽂이에는 영어교과서와 각종 문제집의 부족함이 없었다. 대학생 때에는 어쩔 수 없는 전공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경제와 투자론, 투자사상 등에 무척이나 큰 관심이 있었다. 이리기웃, 저리기웃하는 내 오지랖 넓은 성격탓에 학교에서 공부하는 교과서나 기타 수업교재로는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내린 결론은 서점이었다. 수업이 없는 주말오후나 공강시간 때는 학교 인근에 있던 Strand’s Bookstore라는 압도적인 규모의 중고서점이 마구마구 내뿜는 고유의 책 냄새를 킁킁거리며, (가끔씩 먼지 알러지가 돋아서 오후 반나절을 콧물과 재채기로 고생한 적도 있었지만) 무척이나 많은 시간을 서점 안에서 기웃거렸다. 그리고 지난 2년간의 공익요원 생활이 끝나가는 지금, 내가 아끼고 또 아끼는 내 책꽂이에는 기존의 투자관련 도서에서부터 마케팅, SNS, 심리학, (사회적)기업가정신, 실용, 여행기 등 다방면의 책과 각종 시사잡지가 각자 한자리씩 자랑스레 꿰차고 있다.

그리고 난 어느 집주인의 그것과 같은 뿌듯한 표정으로, 정리했던 책을 주제별로 다시 정리하고 새로이 산 책들에게 새로운 공간을 지정해주면서 다시 정리하기를 반복하는 무척이나 비효율적인 습관 또한 가지고 있다. 이처럼 나에게 있어 책이란 귀한 존재이다. 하지만 주인 잘못 만나는 운명을 가진 이 시대의 수많은 불우도서들은 대게 다음과 같은 人生, 아, 아니, 書生을 살게 된다. 평소엔 높디높은 타워팰리스 책꽂이 숲사이 차가운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초라한 홈리스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중도실용 가치를 표방하는 우파보수 성향의 주인에게 낼름 등용되어 밤이 깊은 어느 새벽 하루는, 맵고 뜨거운 라면냄비를 온 몸으로 감싸안는 받침대로, 또 어느 햇살 가득해 나른한 오후, 헤드앤숄더와 니베아 데오데란트 (가급적이면 샤넬 넘버5)를 동시에 요하는 초특급 럭셔리 헤어를 위한 접이식 간이베게로 쓰이다가는, 결국엔 어둡고 습한 폐지함으로 떠밀리고 전국 팔도에서 모인 다른 책들과 함께 갈기갈기 찢어져서 ‘재활용지’라는 또다른 운명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

불우한 운명.
가혹한 숙명.

이처럼, 전국에 있는 모든 책에게는 사람사는 이곳과도 같이 팔자가 있나보다.